(이사야 58장 3-9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 주지 아니하시나이까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4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 도다 너희가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5 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의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6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꺽는 것이 아니겠느냐 7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아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8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화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9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동기를 너무 잘 아십니다.
금식을 통해서도 우리의 동기를 감찰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묵상 본문에서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떤 금식을 원하시는 지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금식을 함으로 하나님께 간구하는 태도는 너무 중요한 것이지만 진정으로 마음을 찢고 괴로워 하지 않는 금식은 하나님께 상달되어지지 않는다고 나와있습니다.
금식기도가 최종적으로 나아가야 할 올바른 목적도 너무나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참된 금식기도는 6절에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는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금식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
나로 인하여서 더 큰 하나님의 의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나의 감내를 통하여 타인의 삶을 바꾸어 놓는 것이 참된 금식의 영향력이라는 것입니다.
7절을 히브리어 원문을 살펴보니 가난한 자들과 집이 없는 자들을 '네 자신의 육체' 라고 부르는 데 까지 나아가는 것이라고 나와있습니다.
결국엔 가난한 자들이나 약한 자들을 네 육체로 여기기 까지 하며 그들을 위해 부르짖는 것이 참된 금식이며 기도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보다 더 우리의 마음에 집중하십니다.
그릇된 태도의 마음의 동기는 결코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없으며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단지 금식 뿐만 아니라 예배, 그리고 우리의 모든행위에 적용될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호세아 6장 6절 "나는 인애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이 말씀은 우리의 행위자체가 하나님께 나아길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시는 지에 대해 깊은 성찰과 고뇌 가 있어야 함을 상기시켜 줍니다.
그렇게 준비된 마음으로 하는 금식이 나를 통해 타인을 구제하고 자유케 할 수있는 진정한 금식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나의 기도는 나 자신의 목적과 의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다른 억압되고 가난한 자들에게 하나님이 자비하심이 베풀어지도록 간구하는 엄청난 영향력의 행위임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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