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사회> 한병철
알랭 에랭베르 Alain Ehrenberg 는 우울증을 규율 사회에서 성과 사회로의 이행기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규정한다. "우울증이라는 병은 권위적 강제와 금지를 통해 인간에게 사회 계급과 성별에 따른 역할을 부여하는 규율적 행위 조종의 모델이 만인에게 자기 주도적으로 될 것, 자기 자신이 될 것을 요구하는 새로운 규범으로 대체되는 순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울한 자는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다. 그는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요구에 부응하려고 애쓰다가 지쳐버리고 만다."
알랭 에랭베르의 논의가 안고 있는 문제점은 우울증을 단지 자아의 경제라는 관점에서만 관찰한다는데 있다. 오직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명령이 우울증을 낳는 것이다. 그에게 우울증은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한 후기근대적 인간의 좌절에 대한 병리학적 표현이다. 그러나 우울증을 초래하는 요인 가운데는 사회의 원자화와 파편화로 인한 인간적 유대의 결핍도 있다.
실제로 인간을 병들게 하는 것은 과도한 책임과 주도권이 아니라 후기 근대적 노동사회의 새로운 계율이 된 성과주의의 명령이다.
그리하여 성과주체는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강제하는 자유 또는 자유로운 강제에 몸을 맡긴다. 과다한 노동과 성과는 자기착취로 까지 치닫는다. 자기 착취는 자유롭다은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더 효율적이다. 착취자는 동시에 피착취자 이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더이상 분리 되지 않는다. 이러한 자기 관계적 상태는 어떤 역설적 자유, 자체 내에 존재하는 강제구조로 인해 폭력으로 돌변하는 자유를 낳는다. 성과사회의 심리적 질병은 바로 이러한 역설적 자유의 병리적인 표출인 것이다.
-규율사회의 피안에서- P. 27-29
알랭 에렝베르가 우울증을 규율사회에서 성과 사회로의 이행기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규정한 것에 대해 단지 자아의 경제적 관점에서만 관찰 했다고 저자는 비판하지만 그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누구나가 모두가 성과사회 안에서 활동한다.
이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부정할 수 없는 사회다.
사회 뿐만아니라 가정안에서도 가족은 가장에게 원하는 성과가 있다.
종교생활이나 교회안에도 이 성과주의는 마찬가지로 만연해져 있다
따라서 종교안에 종속된 사람들도 그렇지 않은 척하지만 쉽게 피로해 지고 우울증을 낳는다.
교회 이벤트나 행사에 대해서 얼마나 성공적으로 개최되고 일이 수행되었는 지에 대한 평가와,
한 해동안 공동체가 얼마나 양적으로 발전하고 성정하였는 지에 대한 목표달성 의식 과잉..
가정안에서는 아내와 아이들이 요구하는 바, 또한 아버지로써 가족들이 바라는 것을 충족시켜야 하는 의무,
이 모든 것으로 인해서 역시 자아는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제성에 몸이 떠 밀려 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스로에게 그 성과가 이루어 지지 않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를 가하고 자기 착취로 까지 치닥기 때문에 현대사회에서 우울증과 성과주의에 대한 착취자와 피 착취자는 더 이상 분리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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