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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e J. Choi's Data Base

"하나님은 공평하신가"

by souljm 2012. 10. 6.

(하나님은 공평하신가)

 

95년 5월 25일의 봄 날씨는 너무나 푸르고 아름다웠습니다.

점심시간 음악실에서 드럼을 연습하던 내게 다가오신 교감선생님이 집으로 가보라 하실 때, 친구 자전거를 급하게 빌려 타고 쭉 내려가는 교정, 그 도로의 아름답던 풍경을 난 아직 잊을 수 없습니다. 그 내리 막 길을 타고 가며 느껴졌던 바람은 상쾌함과 불안함, 표현할 수없는 미묘한 감정이 공존하는 맞바람 이었습니다.

마음한편에는 내가 이전에도 느껴 보지 못한 불한마음을 가지고 페달을 밟아 데던 20분여의 결코 잊을 수 없는 시간 이었습니다. 후에 알았지만 그때 고2였던 친형은 인천에서부터 3시간 넘게 기차를 타고 그 마음을 가지고 내려왔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더 매여 옵니다.

 

흔히 생사(Life and Death)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영원하지 않고 언제든지 하나님이 부르시면 이 세상을 아무 미련 없이 또 준비 없이 떠나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확실한 가르침은 15년 전을 거슬러 여전히 완벽히 이해되어 지지 않은 아버지의 하늘로의 부르심으로 더 실감 되어 집니다.

 

하나님이 주관 하시는 이 세상의 모든 일 들을 우리가 완전히 이해 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은 여전히 "No" 입니다. 그냥 "아니오"가 아닌 "Absolutely No"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나에게 일어났던 크고 작은 사건들 중 아니, 가장 큰 사건인 아버지 이야기만 꺼내어 보아도, 여전히 하나님은 내 순수이성(Pure Reason) 관점에서는 절대 이해되어지지 않는 사건들 투성이 이죠. 그럼에도 우리는 늘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며 그분을 더 알고자 힘써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이 땅에서의 임무라 명하십니다.

 

하나님은 전지(Omniscience)하신 분이십니다. 모든 것을 다 이미 알고 계시고 계획하시고, 주관하십니다. 사실 중3 갑작스런 아버지의 교통사고로의 죽음 이후에 하나님은 완벽(Integrity)하신 분이신가, 공평(Impartiality)하신 분이신가에 대한 풀리지 않는 숙제를 늘 지니고 다녔습니다. 처음엔 나는 하나님이 교통사고를 내셔서 아버지를 평화로운 가정 속에서 데리고 가셨다는 사실과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아직 미쳐 성장하지 못한 2남 1녀와 어머니를 과부로 하루아침에 만드실 그런 혹독한 하나님이 아니라고 어릴 때부터 배웠기 때문이죠. 하지만 만약 그 사건이 하나님이 주관하지 않으신 일이라면, 하나님의 능력이 무력해지는 것에 대한 회의도 들었습니다.

 

그 아버지의 교통사고는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인가? 이 질문에 두 가지의 대답이 존재합니다. 만약, "그렇다"라고 한다면 하나님은 정말 가학적이고 피도 눈물도 없는 이해되지 않은 절대자 이십니다. 그런 하나님 이라면 더욱이 의지하고 믿기에는 아이러니(An Irony)한 분이라 생각했습니다. 또한 아니라 한다면, 하나님은 잠깐 다른 사람에 더 집중하느라 한눈을 파셔서 그 상황을 미쳐 놓쳐버리신 서툴게 세상을 조율하시는 분, 완벽하신 성품에 상처가 되는 무력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접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관점과 삶에서 보여질 땐 있어서는 안될 일이고, 마치 하나님이 냉혹한 구약시대의 하나님으로 비춰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선 "너희의 상관할 바가 아니다" 이죠. 그분의 판단과 법칙안에 세상이 돌아가는 것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아버지 사랑 없이 많은 것을 빼앗긴 편모로 살아온 내가 지금 이해되어 지는 것은 "알 수 없다"  (I do not know ), 이해되지 않는다, (I do not understand )의 개념보단, ( I can not comprehend) "파악할 수 없다" 에 가깝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이성으로 이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이해되지 않는 것을 경험하는 것은 비단 나만의 문제입니까? 모든 현상들을 바라볼 때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는 모든 문제가 더욱더 미궁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그래서 초라한 인간의 나약한 모습만 발견하게 됩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해 이해하려 해서도 안 됩니다.  운명, 계획을 알고 행동하고 싶어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죄에 해당합니다. 마치 무당과 점쟁이 처럼요.아마도 내가 그날 그 일을 미리 알고 예견 (Prediction) 했더라면, 그날 아침 난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아빠, 어려운 사람의 부탁을 들어주려 점심시간에 직장에서 나와 오토바이를 타고 나서려거든, 출발 전 신발 끈 한번 만 더 동여매거나, 커피한잔 타먹는 여유를 부리 세요" 라고 아침에 헤어질 때 말했을 것입니다. 그럼 그 차와 부딪히는 순간 0.01초를 피할 수 있었을 테니요.

 

이것을 반대로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입장에선 안타깝지만 그냥 내버려 둔 것에 가깝습니다. 사고 순간 얼마나 아플지, 그 이후에 얼마나 많은 가족들의 고통을 수반해야 하는지를 미리 보심에도 오히려 이를 악무시고 계획하셨던 독한 하나님에 가깝습니다. 마치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처럼 말입니다.

 

그것은 내 순수 사고로 이해되지 않는 것입니다. 

 

결론은 하나님은 공평하십니다. 왜냐하면, 비록 우리가족이 아빠 없이 어머니가 버텨낸 세월을 드러내놓기엔 너무나 억울하고 슬프지만, 그것이 하나님이 48세로의 아버지 인생을 만들었다면 공평한 것입니다. 삶을 놓고 여기서

"공평하지 않다"라는 개념이 성립하려면 정녕모두가 100살 까지 사는 생채학적 동일한 인생이 주어져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생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견해가 진실로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삶속에서 그것을 깨닫고 왜 그러셔야 했는지를 알아가는 숙제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작은 욕심은 하나님이 날 아빠로써 아들 소울이 에게 성인이 될 때 까지 조금 더 많은 것들을 함께 하고 더 누릴 수 있게 허락하신 인생이기를 바래봅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마태 10장 29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