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태운 아이가 200원을 훈장으로 받다.)
국민학교 2.3학년 여름방학 때로 기억납니다.
집에서 혼자 놀기가 지쳐 있던 찰나에 하루는 불을 때우는 초가집 부엌에서 라이터 하나를 발견합니다. 집이 오래된 초가집이어서 지붕 가장 자리 끝에는 작은 아이의 손으로 뻗어도 닿을 만큼 볏 집이 내려 않아 있었습니다. 그 볏 집에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가 끄고, 붙였다가 끄는 장난을 몇 번이고 홀로 재미있게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 순간은 나에게 불어 닥칠 재앙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불장난에만 열중합니다.
그 찰나에, 순식간에 불이 볏 집 전체로 번져버렸습니다. 검은 연기가 무섭게 하늘로 솟아 오를 때쯤, 작은 소년은 무엇인가 잘못 되었다고 판단이 되어 져, 샘으로 달려가 바가지에 물을 받아와 홀로 지붕에 뿌려 봅니다. 하지만 역부족으로 불은 삽시간에 점점 번져 갑니다. 방 에 있던 누나를 부릅니다. 밖에 나온 나보다 3살이 많은 누이는 울며 마당 앞쪽으로 뛰어나가 동네 사람들에게 "불이야, 불이야" 외칩니다. 저 멀리서 논길로 사람들이 양동이와 곡괭이를 가지고 달려오는 모습이 보입니다. 어느덧 마을 사람들이 수십명, 백명, 순식간에 몰려들어 아비규환을 이룹니다. 어떤 아저씨는 방으로 뛰어 들어가 닥치는 데로 밖으로 물건을 던집 니다. 거기엔 우리 책가방도 있습니다. 후에 알았지만 그 아저씨는 아이들은 공부는 해야 한다며 가방을 먼저 던졌답니다. 그 시절에 어른들은 아이들 공부에 대한 태도는 멋졋 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다 몰려들었고, 읍내에서 소방차 2대가 왔습니다. 겁에 질린 저는 사랑채 마루 구석으로 숨었습니다. 동네 품앗이를 간 어머니가 일하다 말고 소식 듣고 달려와 마당에서 오열을 합니다. 멀리 읍내에서 회사를 다니던 아버지가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 왔습니다.사태 파악을 한 아버지가 저를 찾습니다. 저의 이름을 부르자 그때서야 저는 울음을 터뜨리며 아버지 품으로 안깁니다. 마치 제 눈앞에 그 엄청난 불의 두려움 과 그 혼란스런 상황 앞에 울음마저 까먹어 버린 아이에게 아버지의 품은 그 울음을 기억나게 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지붕에 다 올라가 곡괭이로, 갈퀴로 검게 연기가 나는 볏 집을 다 쓸어내립니다. 그 시대의 동네 사람들의 협력은 그 어떤 커뮤니티 보다 강했습니다. 순식간에 정리가 되고 앙상하게 탄 뼈대만 남고 지붕이 날라 가 버렸 습니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 정리가 될때 쯤 사람들은 하나둘씩 다 집으로 돌아갑니다. 동네 아저씨들이 제 머리를 비비시며 " 이놈의 자식" 한마디씩 던지고 가십니다.
.아버지가 저에게 말씀 하십니다."괜찮다 이제 다 끝났어. 아 지붕 벗겨 내니까 후련하다. 잘 했어 막내아들. 일주일 후에 이거 뜯어내고 슬라브 씌우려 했는데 품삯 안 들고 사람 불러 우리 아들이 해 치워버렸네"아버지는 제게 잘 했다며, 가 아이스크림 사먹으라며 200원을 건네 주 십니다. 후에 알게된 사실인데, 정말 일주일 후에 지붕을 뜯어내고 신식 슬라브로 바꾸려 했답니다. 저희 집이 그 동네 유일하게 남은 초가집 이었습니다.
아직도 기억나는 아버지가 제게 하신 방법은 그 엄청난 실수와 장난 앞에 야단과 혼냄이 아닌, 격려였습니다. 그 기억이 아직 생생합니다. 손에 쥐어주신 그 200원으로 정말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는 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생생히 기억나는 건 아버지의 따뜻하게 안아주시던 품 이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지옥" 이란 말을 떠올리면 그 활활 타오르던 어린 날에 우리 초가지붕이 타오르던 생각이 납니다. 지옥불도 그 처럼 뜨겁겠지요. 하지만, 그 엄청난 한 여름날 유년시절의 사건이 제게 상처가 되지 않는 추억으로 기억되는 까닭은, 아버지의 따뜻한 막내아들에 대한 대처였는지 모릅니다. 저도 이제 한 아들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 아들도 저를 닮았으니 꽤나 장난꾸러기가 되겠지요.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과 지혜를 배우고 싶습니다.
따가운 수염의 얼굴로 늘 저를 비비시며 귀여워 해 주시던 아버지의 품을 그리워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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