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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협소한 서재

<제자입니까> 후안 카롤로스

by souljm 2017. 1. 5.

대학시절에 제자도에 관하여 관심이 많았었다. 그 후에 사역의 현장에서 제자양육을 하면서 제자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고민했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들어가기 전에 그 제자도에 관한 전반적인 체계를 정리하는데 도움을 많이 받았던 책이다. 그러면서 미국에 나와서 2세들과 1.5세를 제자화 시킨다고 몇년간 노력해 보았는데, 여전히 제자가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다.그러면서 과연 제자도에 관한 마음을 정비할겸 서른중반이 되어서 다시 꺼내들은 책이다. 제자도에 관한 책중에서는 단연 명료하게 개념적인 부분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후안 까롤로스 <제자입니까> 발췌내용-



 

제자는 삶을 나의 중심에서 주님 중심적으로 사는 것이다. 복음이라는 것은 세상의 중심인 나에서 주(퀴리오스)Lord 로 옮겨가는 과정이다.

 

칼 마프크스는 종교는 대중의 아편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이상한 것도 아니다. 복음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탈출구가 되어서는 안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나의 멍애를 매고” ( 11:28-29) –나의 멍애를 매고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는 무거운 짐으로 부터 해방만을 원하지 말고 예수님의 멍애를 져야 한다.

 

삭게오가 나무에서 내려오는 순간 그는 자기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 아래 복종 시켰다. 젊은 부자 관원에게도 같은 일이 있다. “선생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8:18)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그리고 와서 나를 쫒으라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정할때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전과 같이 다라 와서 자네를 위한 타협점을 찿겠다고 하며 따르는 것은 자기 방식대로 예수님을 따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예수님은 초지 일관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신다. 어디서 얼마만큼 우리에게 보상 해 주시겠다고 한번도 말씀 하시지 않으신다. 그분은 단지 명령할 뿐이다.

 

 

명한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17:7-9)

우리가 주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안에 종이라는 개념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친구의 관계 동등한 관계에서는 주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노예(Slave) 임금을 전혀 받지 못하고 계약관계이다. 자신의 의지, 자유는 없었다. 대가가 없다. 댓가를 바라지 않는다.

 

무익한 종이라 행한다고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17:10)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 안에의 의미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완저히 소화되어서 24시간 그분의 것이 되었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것을 잃고 예수가 되어야 한다.

 

주님 내가 무엇을 할까요? 라는 질문이 전제 되어야 한다.

주인님 이것 저것을 하십시요 라고 주문하지 않는다 네 주님 내가 이것을 하겠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셨고 우리 모든 시간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예수님께서 제자의 비밀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신 구절이 있다. (요한복음 13:34-35) “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하나님 나라의 산소 O2

 

진짜 사랑을 하는 것이 참 된 제자의 덕목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다.

 

어둠은 개인주의(Individualiism) 이기주의 (selfishness)이다 빛은 사랑, 교통, 친교이다. 만일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는 서로를 형제로 알기 때문에 우리에게 사귐이 있을 것이다.

 

요한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요일4:7-8)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 갔다고 했다. (요일 3:14)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구원을 받지 못한것이다.

 

-덧붙임 나의 설명: 우리는 타인에 대해서 시기하고 비판적인 표현을 서슴없이 하고, 한 사람을 도마에 올려 칼로 난도질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거나 희열을 느낀다. 하지만 이는 구원받은 자들이 하지 말아야할 가장 금지된 행동이다. 나는 이에서 부터 얼마나 자유로웠던가

 

-사랑은 모든 율법의 완성이다 (13:10)

 

예수님은 결코 은사로 그들을 알리라 라고 말씀하지 않으셨고,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가? 우리가 맺는 열매가 바로 나이다)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생명이다. 은사와 예배도 좋다. 그러나 기억하라 사랑만이오직 생명이다.

 

-이웃 사랑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 19:18)

 

-예수님 위주의 삶

 

우리는 포기하고 또 사랑해야한다. 영원히 사랑때문에 목숨을 잃은 다해도 그것이 예수가 보여준 모습이다.

 

흡연이라는 창문을 닫고 주일학교 교사라는 창문을 연다 음주라는 창문을 닫고 연보라는 창문을 연다. 여전히 나라는 중심에서 그리스도 라는 중심으로 변화를 준다.

 

요한일서 3 16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성장에 있어서 교인이 100명에서 600명으로 늘어가는 것은 성장이 아니라 살이 쪄가는 것이다. 영적 갓난아기를 그냥 600명 거느렸을 뿐이다.

 

처음 아내를 만났을때의 똑 같은 화법으로 대화를 시도한다고 하면 전혀 관계가 진전이 없는 것이다. (얼마전 교회의 청년과 대화를 하면서 그 청년이 다시 2년전의 모습과 신앙으로 회기 한듯한 모습을 보면서 전혀 나와의 2년간의 교제 속에서 믿음의 성장이 없었다는 것을 보니 가슴이 아프고 시렸다)

 

현대교회는 사도적인 방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신자들로 하여금 서로 집을 세울 수 있도록 훈련 시킬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건축가가 다른 건축가를 훈련시키는 것과 똑 같은 의미와 이치이다.

 

바울의 목적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4 14-15) 양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성장 시키는 것

 

만약 바울이 디모데, 빌레몬, 에바브라 그리고 다른 제자들을 키우지 못했다면 어떻게 세상을 홀가분히 떠날 수 있었겠는가

 

 

교인 한사람은 벽돌이다. 저마다 더 많은 벽돌ㅇ르 모으기 위해서 애쓴다. 목사들도 많은 벽돌을 자신의 공사 현장으로 가져오려고 복음 사역에 힘쓴다. 사실 벽돌들을 지키고 비축하는데 너무 바빠서 건물은 전혀 쌓아 올라갈줄 모른다.

 

큰 아이를 다루는 일은 함양(Edifying)과 세움(building up)

의 일이지 돌봄이 아니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테가 되었느니라”( 12:4-5)

온 몸은 미국식으로 말하자면 하나로 뭉쳐진’ (Get it gother), 이다.

 

제자란 무엇인가

제자는 회원과는 다르다. 제자란, 스승의 삶을 본받아 살아야 한다. 그 가음에 스승이 했듯이 다른 사람에게 자기 삶을 가르쳐야 한다. 그러므로 제자도(Discipleship)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고 홍보하는 것과는 아주 다르다.

 

-가르침에는 계시(Revelation), 양육,(formation), 지식(information)이 세가지 국면이 있다.

 

우리는 지식에 연연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양육을 중시하셨다. 그분에게서 제자 양성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에베소서 5: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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