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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는 진리

믿음대로 된 백부장 <마 8:5-13>

by souljm 2015. 3. 6.

성경에서 가장 믿음 좋다고 칭찬 받은 백부장의 이야기이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셨을 때 백부장이 나아와 예수님에게 하인이 중풍병으로 누워 몹시 괴로워 하고 있다고 예수님께 고하면서 이 이야기는 시작이 된다.




사진출처-구글 이미지-


백부장은 백 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있는 로마의 군대 장교이며 다른 누가 복음에서는 이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우리가 백부장의 믿음을 바라 볼 때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 라고 말씀 하셨을 때 백부장은 '내 집에 들어오심을 감당치 못하겠다고' 한 말에서 그 믿음의 시작을 볼 수 있다.

왜 백부장은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받아 들이지 못했을까?

이유는 백부장은 아마도 로마의 군인 이었으므로 당시 로마 군인의 입대한 사람들은 셈 족속의 에돔 사람이 었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유대인의 전통에 대한 놀라운 민감함은 무엇이냐면 예수님을 자신의 이방인 집에 맞아 들이는 것이 합당치 않다고 말하는 것에서 그 이유를 찿을 수 있다. 


백부장은 예수님이 어떤 분 이심을 알고 있었다. 즉 예수님이 오래 기다려온 메시아라는 것을 믿고 있었다. 이러한 백부장에 대한 믿음을 예수님은 놀랍게 여겨 그의 모범 적인 믿음을 칭찬하게 된다. 

그의 믿음을 빗대어 말씀하시며 11절에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즉 백부장의 믿음과 같이 따르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영원한 구원을 약속하신다.

또한 그렇지 않은 자들 '그 나라의 본 자손들' 이스라엘 민족을 뜻하는 셈어 단어라고 하는데 백부장의 믿음의 모법을 따르지 않는 자들은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상실할 것이라는 경고를 하신다.


"말씀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어떻게 이러한 열정과 밈음이 생기게 되었을까?


예수님이 어떤 분이라는 기본적인 이해와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 믿음이 생기려면 예수님을 알아야 하며 그의 능력과 무한하심과, 모든것이 가능하시다는 그의 성품을 알아야 저런 고백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자기 하인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 즉 아파하는 리더쉽이 있어야 한다. 성경 이야기에서 그 하인이 왜 중풍병이 걸렸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예수님이 그 하인을 고쳐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장교가 하인을 위해서 예수님에게 찿아 온 다는 것은 보통 수하를 위하는 마음이 아니면 불가능 했을 것이다. 

그는 군의 통솔 장교로서 하인을 위하는 마음이 정말 대단했을 거 같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리더쉽이 대단했을 거라는 추측도 또한 가능한 것 같다.


그런데 뜬금없이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신 후에 예수님은 이에 대하여 오늘 구절 마지막에 끔찍한 고난에 대한 묘사를 하신다. 믿음을 칭찬하시면서 왜 천국가지 못하는 자들이 맞게 될 끔찍한 고난의 상징인 '울며 이를 갈리라' 라고 말씀하셨을까?

아마도 필자가 느끼는 바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신앙생활을 향한 경고가 아니었을까? 우리 삶에도 아뢰는 소망에 대한 바라는 기도를 믿음으로 착각하여 천국 시민으로 이어지는 기복신앙이 있다. 백부장이 예수님에게 자신의 청이 있어서 나와서 그 일이 해결 되었다. 즉 우리 삶속에도 우리의 소원과 필요를 늘 예수님께 아뢴다. 그것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든 가지지 않든 말이다. 그 믿음이 우리의 천국 구원과 연관되는 놀라운 믿음이라는 것을 모르고, 복을 기원하기만 하는 기복신앙에 대해서 예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고 계시다. 진정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보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을 향한 그 믿음이 내가 원하는 것을 얻고 해결하고자하는 믿음이면 절대 백부장의 믿음은 아니다. 그러한 자들에 대하여 예수님은 고난을 예견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을 바로 아는 것과 믿음으로 이르는 천국은 아마도 별개인 모양이다.


믿음은 우리를 천국으로 이끌며, 예수님이 어떤 분이심을 알면 백부장과 같은 길이 후대에 귀감이 될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기억될 것이다.